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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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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10월)
삼성(三姓)시조의 묘소 또는 단소에 음력 10월 시제(추향)

 김태사 시제 : 음력 10월 10일

안동김씨 태장재사(安東金氏 台庄齋舍)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6호이다. 안동김씨 태장재사는 시조인 태사 김선평(金宣平)의 단소(壇所)를 수호하고 봉향(奉享)을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이것은 안동지역의 재사 가운데서 규모가 크고 각 부분이 용도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건물이다.
 
 재사는 1711년(숙종 37)경 작은 집을 지었다가 1749년(영조 25)에 확장하였는데, 식수난과 질병이 겹쳐 사헌부 지평 김양근(金養根)이 경향각처의 뜻을 모아 현 위치에 승려의 집을 철거하고 터를 닦아 1793년(정조 17)에 28칸을 중건하고 익실(翼室 : 분채의 좌우 편에 달린 방)과 문루(門樓)를 옮겨지었다. 1913년 주사(廚舍)를 현위치에 확장하여 10칸을 중건했고, 1960년 풍수해를 당해 재사를 보수했다. 재사는 一자형의 이상루(履霜樓)와 □ 자형의 재사, ᄃ자형의 관리사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는 日자형의 배치형태를 취하고 있다.

 재사는 제수를 준비하는 유사실과 전사청, 참제원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상루는 묘제(墓祭) 뒤에 음복과 문중회의를 여는 장소로 사용된다. 재사는 민도리집의 간결하고 검소한 건물이나, 누(樓)는 이익공(二翼工)의 팔작지붕건물로 누상부(樓上部)에는 3면에 판벽을 치고 판문을 설치하였다.


▲ 신도비

▲ 안동김씨 시조 태사공 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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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사 시제 : 10월 중정

안동권씨능동재사(安東權金陵洞齋舍)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재사(齋舍). 중요민속자료 제183호. 고려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분인 권행(權幸)의 재사이다.

초창(初創)은 1653년(효종 4) 관찰사 우(우)가 종인(宗人)들과 논의하여 마루, 방, 곳간 등 16칸을 건립하였고, 그 뒤 1683년(숙종 9) 관찰사 시경(是經)이 누각 7칸을 추가로 지었다. 그러나 1743년(영조 19)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어 중건하였다.

1896년 다시 화재를 입어 당시 70여 칸의 건물 중 임사청(任祀廳), 전사청(典祀廳) 등 몇 칸만 남기고 모두 소실된 것을 1896년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 추원루(追遠樓)

이 재사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왼쪽에 높은 축대를 쌓아 추원루(追遠樓)를 전면에 내세워 문루를 삼았다. 누문 안의 큰마당 건너 우뚝 솟은 재사 큰채와 그 앞 양쪽에 늘어선 동재, 서재가 튼ᄆ자를 이루었다.

또 동재의 뒤쪽에 임사청, 전사청, 주사(廚舍)가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일곽을 이루고 있어서 전체 배치가 日자를 옆으로 뉘어놓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추원루는 누하에 다락문을 내고 그 앞에 여러 단의 자연석 계단을 설치하여 출입하게 하였다.

통로의 좌우에는 일부 흙과 판자로 벽을 치고 수장(收藏)공간을 마련하였다. 능동재사는 사랑채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원래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방 2칸, 오른쪽에 방 1칸을 둔 정면 5칸집이었으나 왼쪽 끝에 방 2칸을 첨가하여 규모를 증대시켰다.

동재(안사랑채), 서재(헛간채)는 각 3칸으로 서재는 방 2칸에 부엌 1칸, 동재는 방 2칸에 전사청 마당으로 통하는 문간이 1칸 놓여 있다. 임사청(별당)은 주사(안채)와 일곽을 이루며 북편의 축대 위에 배치되었는데, 어칸이 마루로 되어 있고, 좌우에 방을 1칸씩 드렸다.

전사청(곳간채)은 ´공성재(供城齋) ´ 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정면 3칸집의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그 뒤쪽에 수장고를 3칸 두었기 때문에 제기고(祭器庫)라고도 한다.

 집의 구조를 보면 추원루의 누하주(樓下柱)는 8각주로 자연석 초석 위에 놓았다. 누상주(樓上柱)는 두리기둥에 주심포계(柱心包系) 이익공(二翼工)의 공포를 형성하였는데 쇠서는 초각(草刻)과 봉두각(鳳頭刻)으로 조각되어 있다.

 지붕 가구는 5량가(樑架)로 종보 위에 사다리꼴 판대공을 세운 윗몸에 첨차를 끼워 마루도리를 받고 있다. 능동재사(陵洞齋舍)는 높은 잡석 축대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운 전퇴(前退)집으로 대청상부는 5량가의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다.

 종보 위에 사다리꼴 판대공을 세우고 그 윗몸에 첨차를 끼워서 마루도리를 받게 하였다. 이 집은 구조적인 면에서 큰 특징은 없으나 재사로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의 건물로 조선시대 제례행사의 성대한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훌륭한 건물이다.


▲ 권태사 묘소

▲ 권태사의 구신도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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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사 시제: 10월 1일

장씨성곡재사(城谷齋舍)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이 재사는 장씨의 시조이자 삼태사 중 한 분인 장정필공의 재사이다. 성곡재사는 앞에 누각이 있고 강당과 동.서재를 갖추고 있으며 관리인이 거주하는 집도 따로 마련하였다.

성곡재사의 뒷산에는 장씨의 시조인 장태사공의 단소가 잘 단장되어 있다. 단소로 올라가는 길은 재사의 좌측 편에 나있는데 계단으로 잘 정비하였다. 장씨의 성곡재사와 태사공의 단소는 칠계재(七戒齋) 장세규(張世奎 )공이 문헌과 제도를 따라 중건(重建)한 것이다.

조선 순조(純祖:병인1806년)때 장태사(張太師)공의 실전묘소(失傳墓所) 부근이라고 짐작되는 청결한 곳(성곡 상산 현위치)에 후손들의 성금(誠金)과 부민들의 일일조역(1日助役)으로 권설제단(權設祭壇:임시로 세운 제단)하고 비(碑)를 세운 다음 그 해 음력 12월 20일에 부(府)에서 보낸 제수(祭需)로 전국에서 모인 종인(宗人) 수백명이 참석하여 처음으로 향사봉행(享祀奉行)하였다.

조선 순조(純祖:1806년)때 설단(設壇) 2년후(1808년)에 제수(祭需)마련과 제관(祭官) 침식(寢息)을 위해 재사(齋舍)를 신축하였으나 협소하였다.

헌종(憲宗:1841년)때 부임한 영장(營將) 인식(寅植)공과 단하(檀下)의 세규(世奎)공이 재사증축(齋舍增築)을 위한 재원 비축에 열성을 다하여 마침내 철종(哲宗:1853년)때에 24간의 재사(齋舍:현재규모)를 중건(重建)하였다.

1936년에 길상(吉相:正三品, 通政大夫)공 근찬(謹撰)으로 세워진 신도비(神道碑)에 비각(碑閣)을 형(炯)(단국대 이사장,1957년대)공이 세웠다.

기영(基榮:한국일보 창립, 경제기획원장관)이 전국 종인(宗人)들과 힘을 모아 1966년에 현재의 재사(齋舍)를 증보(增補)하고 제단(祭壇)을 넓히고 제단비(祭壇碑)와 의물(儀物)들을 개수(改修)하였으며 이때 영봉(永鳳)공은 영휘루(永輝樓)를 건립하였다.

성곡재사(城谷齋舍)는 지방기념물(地方記念物) 제155호로 추원재(追遠齋) 8간을 중심으로 동재(東齋) 4간, 서재(西齋) 8간이며 주사(廚舍) 12간이 건립되었으며 앞에는 24간 문루인 영휘루(永輝樓)가 2층 콘크리트로 우뚝 솟아 재사의 규모가 웅장하며 50m 동쪽으로 신도비각(神道碑閣)이 세워져 있다.


▲ 장태사공 단소

▲ 장태사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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