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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사와 병산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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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귀족의 왕위 쟁탈로 왕권(王權)이 약화되자 9세기에 이르러 후백제의 견훤(甄萱)과 고려의 왕건(王建)은 신라의 영토를 쟁취(爭取)하기 시작했다.

후백제 견훤(甄萱)은 신라의 여러 성을 쟁취(爭取)하고 929년 고창군(古昌郡)을 침략하려고 석산(와룡면서지, 절골 앞산)에 진을 치고 927년 동수(桐藪:팔공산)싸움에서 크게 패한 고려 왕건(王建)은 군사를 정비하여 병산(甁山:와룡면 서지. 절골 뒷산)에 대치하니 그 거리가 500보 정도였다.

이 때는 삼태사(三太師)의 향배(向背)에 따라 승패(勝敗)가 좌우되는 시점인데 태사공(太師公)들은 왕건(王建)을 돕기로 협의하고 930년 고려를 도와 협공(挾攻)하자 견훤군(甄萱軍)은 군사 8000여명을 잃은 후 패하고 도주하였다.
이때 안중(安中)할머니가 몰래 고삼술을 빚어 견훤(甄萱)의 군사들에게 권하여 만취(滿醉)케 하고 삼공신군(三功臣軍)에 알려 급습(急襲)으로 승리(勝利) 할 수 있게 하였다는 설(說)이 전(傳)하고 있다

병산대첩(甁山大捷)에서 대승하자 인근 30여 고을은 물론 신라 동북쪽 여러 성주(城主)가 고려에 귀부(歸附)하였으며 신라 경순왕(敬順王)은 935년에 고려에 투항(投降)하고 후백제는 부자간(父子間) 왕권(王權) 싸움으로 936년에 고려에 멸망하니 후삼국은 통일(統一)되었다.


▲ 안묘당(安廟堂) : 안중할머니와 안금이 위패 봉안